환상의 밀포드사운드
10-07-08 08:59 2700

퀸스타운 출발 밀포드로드와 밀포드사운드의 겨울 경치

 

뉴질랜드관광회사의 웹사이트들을 살펴보면 이 나라의 많은 관광지들 중에서 밀포드사운드를 가장 많이 부각시키고 있다.  특별히 이곳의 겨울경치를 담은 사진은 전 세계인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몇 차례에 걸쳐서 바로 이 뉴질랜드 대표관광지 밀포드사운드의 숨은 묘미를 소개하려고 한다.

 

여행손님들을 모시고 남섬여행을 자주 하는 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밀포드사운드를 다녀왔다.  그러나 한번도 지루하다거나 식상한 느낌을 느끼지 못 하였다.  도리어 언제나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 볼수록 감동적인 자연의 경이로움 때문에 신에 대한 경외심을 새로이 돋우는 시간이 되었었다.  누구는 밀포드를 일년 365일 동안 365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충분히 동의하는 바이다.  이런 다양한 모습을 제한된 글로 서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초행길을 나선 여행객을 위한 길잡이 차원에서 퀸스타운에서부터 밀포드사운드까지의 노정을 스케치하듯이 그려보겠다.

 

퀸스타운에 접해있는 거대한 호수 와카티푸는 그 느낌이 참 좋다.  특히 여명이 다가오는 시간에 호숫가 도로를 따라 길을 나서다 보면 절로 감탄의 소리가 나오게 된다.  모셨던 손님 중 누구는 잔잔한 호수와 건너편 높은 산의 중턱에 걸린 실구름들을 보면서 눈물을 닦으신 경우도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으셨단다.  여행이 주는 유익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30분 꿈을 꾸듯이 운전해 가다가 보면 작은 마을 킹스톤 Kingston 이 나온다. 이름의 어원이 왕의 마을 (Kings Town) 인걸 보면 참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국제적인 관광도시 여왕의 마을은 저렇게 붐비고, 저렇게 근사한데, 이 마을은 정작 겨우 50여 호 정도밖에 안 되니 말이다.  마치 뉴질랜드의 남자와 여자의 위상을 대변하는 것 같다.

 

호숫가 도로를 지나서는 Southland의 너른 벌판을 줄곧 달려가야 한다.  계속 이어지는 목장들에는 우리가 뉴질랜드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고 시위하는 듯한 사슴과 양들과 젖소들이 새벽같이 일어나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눈 속에서 풀을 찾거나 주인이 별미로 제공하는 건초더미 베일, 먹음직스럽게 커버린 스웨드(Swede / 순무)를 먹느라고 여념이 없다.  이렇게 많은 가축들이 모두 한가지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수고하는 가축들에게 격려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어진다.  그래 바로 너희가 뉴질랜드를 먹여 살린다.  열심히 수고해라 라고 말이다. 

 

한 시간 30분을 달려서 중간에 만나는 작은 마을은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사슴목장을 시작했다는 모스번 Mossburn 이다. 작은 골프장이 있고 50여 가구가 전부인 전형적인 남섬 시골의 목장마을인데 이곳의 휴게소 겸 데어리인 Mossburn Diner 라는 업소를 우리 한국인 부부께서 오랫동안 운영하고 있다.  주변의 다른 마을들보다 적어도 4, 5도씩은 추운 분지 속에 들어앉은 마을에 현지 키위 (뉴질랜드인) 들 속에서 열심히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을 보여주고 계시다.  이동하는 관광객들과 주변의 현지주민들이 주 고객들인데, 바쁜 시간에는 단 일분도 자리에 앉을 여유가 없을 만큼 분주하단다. 지나는 길에 들려 차라도 한잔 팔아주고 싶은 곳이다.  아니 팔아주는 것이 아니라 차 한잔 마시면서 그보다 더 값진 구수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지불하는 가격 곱절의 대접을 받는 셈이리라. 오늘도 수고하시는 멋장이 권사장님 부부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본다.

 

길은 계속 굽이굽이 이어져 테아나우 Te Anau 로 진행한다.  모스번과 테아나우 중간쯤에 The Key라는 독특한 이름의 작은 마을이 있다.  학생들 서른 남짓의 작은 학교가 있는 마을이다.  아니 마을이라기 보다는 그냥 학교만 있다.  교실 세개, 도서실 하나, 선생님 세명, 한국의 시골분교를 보는 느낌이다.  호기심많은 나는 몇차례 들려서 학교를 둘러본 적이 있다.  작지만 있을 것은 대부분 갖추어져 있고, 진지한 학생들의 수업열기에 방해하는 내가 미안한 느낌을 받곤 하였다.  아이들과 여행하는 경우라면 잠시 교정을 걸으며 뉴질랜드 시골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은 기회일 것이다.

 

테아나우에 들어서면 꼭 호숫가 도로를 따라 마을 끝에까지 천천히 진행해 보길 권한다.  남섬최대의 호수인 테아나우호숫가에 편안하게 자리잡은 이 마을은 최근에야 개발 바람이 불면서 바삐 움직이는데 불과 얼마 전 까지도 그냥 조용한 시골마을 그 자체였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거대한 Fiordland National Park를 바로 옆에 두고 있는 관문임에도 말이다.  이렇게 개발되어 가면 몇 년 후에는 이 마을이 어떻게 변해 있을 지 무척 궁금하다.  아무리 변해도 호숫가를 따라서 심어진 커다란 유칼립투스 나무들 만은 그대로 꼭 남겨 두었으면 좋겠다.

 

 

 

테아나우 마을은 바쁜 일정 중에 그냥 지나치고 마는 경우가 보통인데, 실은 알찬 구경거리가 많다.  자녀들의 교육적인 면에서도 꼭 시간을 내어서 들려야 할 곳이 여럿 있다.  먼저 호숫가도로의 초입에 있는 DOC사무실에 준비된 인포메이션센타이다.  너른 실내에 주변의 자연 정보와 역사 자료들을 잘 진열해 놓았다.  또 주변의 많은 트래킹코스에 대한 필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무료이다. (ㅎㅎ) 실은 나도 시간이 부족하여 모든 자료들을 꼼꼼히 읽어보지는 못하였고 관심있는 것들만 본 정도인데, 무척 자세하고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사진과 그림들과 함께 영어로 쓰여진 내용들 속에서 과연 이 지역이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어떻게 살아왔었고, 또 이 나라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 지역을 보호해 갈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층에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는데, 웃음이 나올 정도로 초라하지만 소박한 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이 건물 길 건너에는 많은 송어들을 키우고 있는 작은 양식장이 있는데 2불을 내고 들어가서 유리 너머로 송어들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에서 1KM정도 Manapouri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작은 동물공원이 있다.  뉴질랜드의 야생조류들을 관찰하도록 마련된 곳이다.  그 유명한(?) 타카헤, 카카포 등이 우리 안에 보호되고 있다.  역시 초라하기는 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둘러보기에 적합한 곳이다.  호수 건너편 숲 속에는 반딧불동굴 Glow worm Caves 이 있다. Real Journeys 회사에서 운영하는 2.5시간의 관광프로그램을 이용해야만 관람할 수 있다.  물이 흐르는 석회동굴 속에 날벌레의 유충이 천정에 매달려서 신비로운 푸른빛을 발하는 것이 꼭 뉴질랜드 맑은 밤하늘의 별을 보는 듯하여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절로 만들어 낸다.  북섬 와이토모동굴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석회동굴과 많은 반딧불이들을 구경하는 것이 충분히 제값을 한다. 하루에 몇 차례만 관광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미리 시간을 확인하고 예약을 하는 것이 실망을 피할 수 있다.

 

밀포드로드는 겨울철이면 항상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이다.  도로가 좁고, 굽이 굽이 휘어져 있으며, 눈이 많아서 결빙구간 또는 눈사태의 위험이 큰 지역이다.  도로당국에서 항상 최우선으로 제설작업을 하면서 관리하므로 조심해서 운전하면 위험을 피하여 여행을 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그래도 경험이 적은 사람들은 일반 교통편이나 관광회사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리얼져니즈회사에서 퀸스타운 또는 테아나우에서 출발하는 멋진 총탄형버스 (Bullet Coach)로 관광객들을 모시고 있고,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을 위하여 몇몇 셔틀회사에서 매일 이른아침에 테아나우를 출발하는 관광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회사들은 지역정보가 밝은 기사님들이 운행하므로 알찬 안내멘트를 기대할 수 있다.

 

밀포드로드를 따라 이동하면서 만나는 관광포인트들을 정리해 보자.  시간에 따라서 거리에 따라서 들어갈 때 나올 때 나누어서 들려 구경을 하면 각자 원하는 좋은 일정을 만들 수 있다. 테아나우호수와 나란히 진행하던 밀포드로드가 호수와 헤어지게 되는 지점에 Te Anau Downs라는 포구가 나온다.  세계적인 밀포드트랙이 시작되는 Glade까지 배가 운항되는 출발지점이다.  포구근처의 호수에 내려서서 호수물도 만져보고 불륜의 호수라는 이름이 붙게 된 호수의 전설도 되씹어 보면 좋다.

 

밀포드트랙은 글레이드에서 밀포드사운드의 샌드플라이포인트까지 54KM의 산길을 34일의 일정으로 걷는 트래킹코스이다.  겨울철로는 위험하기 때문에 통제하며 해마다 10월부터 4월까지만 개방하는데, 매일마다의 입장객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원하는 날짜를 예약하려면 일년 전에는 서둘러야 한다.  다만 예약을 하였어도 해당 출발일에 기상이 안 좋거나, 코스가 망가져서 안전상에 위험이 커지면 자연보호부 Department of Conservation 에서 일방적으로 출입을 통제하기도 하므로 밀포드트래킹을 하는 것 자체가 무척 귀한 체험이다.  실은 산을 좋아하는 나도 아직 못해 보아서 정확한 감동을 전하기 어려운데, 주변에 몇몇 분들이 해 보셨거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니 입소문으로 찾아서 직접 들어 보고 간접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에글링턴평원은 답답한 마음에 활력을 공급받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벌판을 내달려 멀리 갔다가 와도 좋다.  길에서 한참 떨어진 강물까지 다녀오면서 풀밭의 푹신함과 주변 산들의 어우러짐을 마음껏 느껴보기 바란다. 멋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컴퓨터 바탕화면 정도의 사진을 만들기 위해 서리가 내린 풀밭에 앉거나 눕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왕자병이나 공주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멋진 경치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다음 장소는 거울호수이다.  Mirror Lakes.  그늘진 곳에 고여 있는 작은 연못.  그 수면에 건너편의 흰눈 덮인 산들이 거울처럼 투영되어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 준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 나타난 미운 오리놈들이 거울들을 자꾸 불량거울로 만들어서 멀리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을 속상하게 한다. 아마도 너그러운 외국관광객들이 먹을 것을 주는 통에 이곳으로 몰려드는 모양이다. 동물들이 인간을 방해하는 꼴이 되었다.  다만 나무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잘 관찰해 보면 운 좋게도 곳곳에서 멋진 거울을 찾을 수도 있다. 

 

밀포드로드 상에는 군데군데 야영장이 잘 준비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한적한 자연 속에 푹 잠겨보려는 선택된 소수의 야영객 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쉼터들이다.  야영장마다 준비된 양심박스에 야영비를 내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  캠핑카를 이용하여 자연을 찾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멋진 여행을 하는 그들에 대한 부러움이 크다.  밀포드로드의 야영장은 바로 이런 캠핑카 여행족의 보금자리가 된다.  마지막 남은 파라다이스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그들만의 야영을 한다면 이보다 더한 분위기 셋팅이 어디에서 가능할 것인가?  우리 여행문화도 이제는 서서히 이런 멋을 찾을 법도 한데…… 가장 권하고 싶은 야영장은 Deer Flat, Lake Gunn 이다.

 

멋진 숲길을 달려서 나오는 곳은 Knobs Flat 이다.  밀포드사운드 선착장에 이르기까지 유일하게 고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잘 갖추어진 공중화장실이 있어서 꼭 들려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철에는 도로 사정이 수시로 바뀌므로 이곳에서 게시판에 게시된 최근의 도로정보를 꼭 확인하고 진행하여야 한다.  도로당국에서는 5월부터 10월까지는 스노우체인을 꼭 가지고 다니도록 법으로 권장한다.  나는 일년 내내 지니고 다니지만.  만약의 경우 긴급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이 작은 준비는 큰 차이를 만들게 된다. 일반 여행객들도 평소에 체인사용법을 연습해 둘 필요가 있다.

 

건물내부에는 화면에서 겨울철 눈사태방지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화면이 계속 나오고 벽면들과 중앙에는 밀포드로드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게시되어 있다.  영어로 되어 있다고 무시하지 말고, 찬찬히 읽어보면 참 유익한 살아있는 공부가 된다.  특히 호머터널을 건설하던 사람들의 수고와 눈사태관리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는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건물 바로 옆에는 크게 자란 터석풀들이 무성하다.  풀 앞에 서서 먼산을 배경 삼으면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다.  만약 여유시간이 있다면 밀포드 방향으로 100미터 더 진행하여 오른쪽에 나오는 작은 개울의 산책코스를 걸어 숲길로 들어가 보라.  살아 숨쉬는 밀포드여행을 만들 수 있으리라.

 

눈사태는 겨울철 밀포드로드에서 가장 큰 이슈이다.  밀포드로드는 뉴질랜드에서 유일하게 눈사태의 위험에 노출된 도로이다.  눈사태 경험이 없는 우리는 그 규모를 상상하기 어려운데 짧은 시간에 엄청난 눈이 쏟아져 내리면서 주변의 모습을 바꾸어 버리는 무서운 자연의 아우성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특별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눈사태의 조짐을 관찰하고 위험이 높아지면 도로를 통제하여 인위적으로 눈사태를 터뜨려서 안전하게 만든 뒤에 도로를 이용하게 한다.  1983년 마지막 사망자 발생 이후에는 아직까지 단 한 건의 눈사태 인명사고가 없다고 하니, 다소 불편한 방법이지만 뉴질랜드의 안전 태세는 우리도 관심있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10여분 더 진행하면 Cascade Creek 이다. 반지의 제왕 영화에 나올법한 우거진 우림 숲을 30분 정도 산책하는 코스이다.  Lake Gunn 에서 흘러나오는 에글링턴강의 시작지점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멋진 풍경을 찾는 소수의 사람들만 찾는 관광장소이다.  길옆에 자라는 나무 한 그루, 나무를 덮은 이끼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지켜 보면 말 못하는 생명체이지만 무언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뉴질랜드 스타일의 여행이 아닐까?  밀포드를 다녀와도 모두 다 같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새벽에 눈 비비고 4시간 차 타서 이동하여 선착장에 가서 크루즈만 하고 낮잠 자면서 퀸스타운으로 돌아가는 버스이동 여행이 어떻게 이런 숲속의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겠는가.

 

건호숫가의 꾸불꾸불한 도로를 조심해서 지나가면 The Divide에 이른다.  국립공원 내의 Routeburn TrackGreenstone Track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600여 킬로미터를 길게 이어지는 남알프스산맥 중에서 그 높이가 가장 낮은 지점이란다.  시간 여유가 있는 일반 여행객이라면 그냥 지나치고 말지만 힘들여서라도 Key Summit에 올라 보길 권한다.  넉넉잡아서 왕복 3시간코스인데 정상에 오르면 360도 펼쳐지는 파노라마 경관이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주는 장소가 나온다. 

 

길은 이제 내리막으로 바뀐다.  오른쪽에 펼쳐지는 깊은 골짜기와 우림숲, 높은 봉우리들.  차를 세워서 둘러볼 곳을 찾게 되는 지역인데 좁은 길을 지나서 오른쪽에 숨겨져 있는 Kaka Creek Lookout 쉼터를 이용하면 좋다.  좁게 만들어진 길을 보면서 이 나라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게 된다.  절벽에 가까운 지형에 너른 길을 만들자면 그 만큼 자연에 훼손을 많이 주게 되는데,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차선을 외차선으로 만들 정도로 자연을 배려하는 마음.  뉴질랜드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면 오른쪽에 작은 도로가 나오는데 Gunn Camp라는 작은 숙소 겸 박물관에 이르는 막다른 길이다.  건캠프는 이 지역의 마지막 거주자인 Marie Gunn이 운영하던 국립공원 내의 유일한 개인영업장소이다.  이 길의 끝에서는 다시 Hollyford Track이 시작되고 있다. 자주 여행을 해도 시간 제약 때문에 나도 아직 건캠프를 제대로 보질 못했다.  1930년대 이 밀포드로드를 닦으면서 이곳 저곳에 캠프를 만들어 거주하였는데 다른 곳들은 모두 철거되었지만 이곳은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다.  물과 전기를 사용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이런 오래된 camp시설에서 숙박을 해 보는 것도 운치 있을 것 같다. 숙소 연락은 gunnscamp@ruralinzone.net 하면 된다.

 

시원한 Upper Hollyford계곡을 오른쪽으로 끼고서 길은 약간 오르막으로 바뀐다.  한국의 지리산 계곡을 생각나게 하는 곳인데 한국과의 큰 차이점은 이런 멋진 계곡에 어떤 음식점도 어떤 영업장도 없다는 점이다.  이런 문화이기에 지금까지 백년 넘게 이 멋진 자연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리라.  길이 갑자기 넓어지는 지점에는 왼쪽에 쉼터가 준비되어 있다.  Monkeys Creek이라고 한다.  이상한 이름인데 터널공사에 참여한 한 인부가 기르던 Monkey라는 이름의 개를 기념하는 이름이란다.  나는 이 계곡물을 한잔으로 3년 젊어지는 신비의 약수라고 소개한다.  바로 위에서 빙하가 녹아서 흘러 내리는 차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모든 손님들이 작은 물통에 시냇물을 받아가고 빙하계곡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모습에서 깨끗한 자연만으로도 얼마나 큰 관광명소가 될 수 있는가 깨닫게 된다.

 

호머터널까지의 길은 전형적인 U자형 계곡을 보여준다.  혹시 기억나세요? 학교 지리시간에 빙하지형에 대해서 공부할 때 지리과부도에 나왔던 그림 말입니다.  좌우의 깍아지른 절벽과 그 사이에 난 편편한 부분.  과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2000미터까지 되는 커다란 얼음빙하덩어리들이 여러 차례 계곡을 흩고 지나가면서 이런 지형을 만들게 되었다는데 내 눈에는 대단하신 조물주의 솜씨에 입만 벌어질 뿐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병풍 같은 절벽면을 타고 수백개의 실폭포들이 흘러 내리게 되는데 이 장관은 직접 보기 전에는 그 웅장함을 상상 조차 하기 어렵다.

 

호머터널은 길을 막은 커다란 암산에 20년 걸려서 터널작업을 하여 터놓은 길이 1270미터의 도로이다.  동에서 서로 만들어진 터널은 6도의 경사가 져 있으며 터널 내부가 어둡고 도로도 울퉁불퉁한 상태이므로 조심하여 천천히 이동하여야 한다.  다듬어 놓지 않은 터널내부가 실망스럽기도 한데 한편 참 뉴질랜드답다라는 생각이 든다.  터널의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별천지를 구경하게 된다.  Cledeau Valley를 굽이 굽이 내려가는 길은 차를 세우고 한참을 구경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장소이다.  아쉽게도 겨울철에는 대부분의 경우 정차를 금지시키고 있다.  다만 천천히 운전하면서 구경하는 것이야 누가 말릴 것인가? 

 

동쪽편 터널 입구가 해발 945미터인데 이곳에서 바로 바닷가인 밀포드선착장까지 불과 20분만에 이동하게 된다.  굉장한 급경사이다.  오래된 차량이나 초보운전자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움직여야 한다.  지난 겨울 밀포드여행 때는 터널 지나서 100미터 지점 도로옆 개울에 하늘을 보고 뒤집혀 있는 승용차를 본 적이 있다.  겨울철 밀포드여행의 위험 정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아쉽게 사진 촬영을 못하였다.  차를 세울 수가 없어서

 

10여분 급한 경사를 천천히 조심조심 운전하면 왼쪽에 The Chasm이란 간판이 나온다.  잘 정비된 숲길을 따라 바위경치가 멋진 계곡을 구경하고 오는 짧은 산책코스이다.  붐비지 않다면 꼭 다녀 오면 좋은 장소이다.  Tree Fern (나무고사리)Beech Tree (비치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은 금방이라도 공룡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그냥 무작정 콘크리트길을 따라서 걷지만 말고 길가의 나무와 이끼를 구경하고 폭포물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라.  클레도계곡이 당신에게 속삭이는 소리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들려 줄 것인가 생각해 보면서

 

캐즘을 지나면 길은 다소 완만해지면서 10분도 안 되어 밀포드에 이르게 된다.  드디어 밀포드사운드.  굽은 길을 돌아서 Mitre Peak가 처음 나타나는 순간에는 갑자기 숨소리가 잦아들게 된다.  바다에서 바로 솟아서 1682미터나 올라간 멋진 봉우리가 나를 압도해 온다.  그러나 우리를 위압하는 무서움은 아니다.  손에 잡힐듯이 가까운 모습으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다.

 

일반 관광객들은 선착장 500미터 못 미친 곳에 마련된 일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선착장까지 이동한다.  선착장 바로 앞의 대형주차장에 주차하면 벌금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간여유를 내어 주차장 건너편 밀포드호텔을 구경하고 휴게실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바다를 바라 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  선착장 왼편의 뷰포인트까지 걸어가 보는 것도 좋다.  바다쪽으로 만들어진 방파제길 끝에서 마이터봉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멋진 컴퓨터 바탕화면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선착장에는 유람회사의 카운터들과 화장실이 준비되어 있다.  크루즈 예약이 되어 있으면 해당 회사 카운터에서 보딩패스로 교환한다.  예약이 없는 경우에도 즉석에서 크루즈구매가 가능하지만, 겨울철에는 크루즈 횟수가 줄어들고, 예약이 다 차서 자리를 못 받는 경우도 있으니까 미리 예약하는 것이 낫다.  자유여행객을 위하여 여러 여행사에서 밀포드 크루즈 만의 예약도 대행해 주고 있다.

 

Real Journeys 라는 이름으로 크루즈선을 운영하는 Fiordland Travel 회사는 이 지역에서 설립되어 크게 성장한 잘 갖추어진 관광회사이다.  멋진 유람선의 선내에는 일류 주방장이 준비한 맛있는 부페식당도 있고, 친절한 한국인 직원들이 자세하게 관광안내도 해준다.  여러분이 내는 크루즈 비용의 일부는 뉴질랜드의 희귀조류인 Blue Duck을 보호하는 프로그램에 기증된다고 하니 이왕이면 뉴질랜드에 기여하는 이 회사를 이용하시라.

 

오늘도 손님들과 크루즈에 나섰다.  무척 맑은 날씨에 햇빛까지 따사로워서 최근에 보기 드문 최상의 크루즈를 즐겼다.  멋쟁이 선장은 오늘따라 신이 났는지 해박한 지역정보를 쉬지 않고 스피커로 쏟아 놓는다. 아 이놈의 영어. 좀 더 잘 들을 수 있다면 저 귀한 정보들이  내것이 되는데……  오늘도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 때문에 마음 한켠에 아쉬움을 묻는다.

 

11시 정각에 출발한 크루즈선은 잔잔한 바다를 신나게 미끄러져 가는데 갑자기 선장이 배를 돌리더니 펭귄을 구경하라고 배려해 준다.  일년에 아주 짧은 기간 알을 낳기 위해서 이곳으로 오는 피오르드랜드 크레스티드 펭귄 (Fiordland Crested Penguin) 의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올들어 처음보는 펭귄인데 그것도 7마리나 보았다.  크기는 블루펭귄보다 조금 큰데 눈 위에 노란 눈썹이 마치 계급장처럼 삐져나와 있다.  한국관광객 서양관광객 모두 한마음으로 펭귄에 주목하는 것이 아주 보기 좋았다.

 

큰바다로 나간 배가 내륙을 향하여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두개의 산에 겹쳐져서 그만 협곡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두차례 찾아오면서 정교한 지도를 제작하던 제임스 쿡선장도 이 협곡만큼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참 후에 웨일즈 출신의 고래잡이 선장 존 그루노가 근처에서 조업중 풍랑을 피해 내륙으로 배를 이동시키다가 마침내 이 멋진 협곡을 발견하고 자기의 고향이름을 따서 Milford Haven 이라고 불렀단다.  재수좋아서 멋진 곳을 찾아내고는 큰 일한 것처럼 자기 고향으로 이름 짓는 그가 조금은 배아프다.

 

배가 회항하는 중간에는 바다로 떨어지는 직탕폭포인 스털링폭포 Stirling Falls 에 근접하여 날리는 폭포물보라를 맞는 시간을 갖는다.  가히 이 크루즈의 절정이라고 할 이 장관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실감이 안 간다.  흩날리는 물안개, 웅장한 물줄기소리, 써늘한 바람, 바다에 새겨지는 동심원.  숨막힐 듯 밀려드는 물보라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냥 Awesome 아니면 Fantastic 이다. 아직 경험못한 사람은 더 늦기 전에 꼭 들려 보시라.  혹시 물줄기가 끊어질지도 모르니까. ㅎㅎㅎ

 

아주 운이 좋으면 배를 따라 헤엄치는 돌고래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특히 이곳에 나오는 돌고래는 그 얼굴모양이 독특한 Bottlenose Dolphin이다.  포트스테판에서 보는 돌고래와 같은 것이다. 무리를 지어 배를 따라다니며 반갑다는듯이 재롱피우는 모습에 마치 내가 돌고래의 친구가 된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더 많은 돌고래들이 잘 보호되고 관리되어서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멋진 프로그램으로 오래 남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현재 밀포드선착장에는 모두 4개 회사에서 10여대의 크고 작은 크루즈선을 운영한다. 동절기에는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개성있는 크루즈가 가능하므로 자기의 기호에 맞는 크루즈선을 골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 여행안내를 쓰다가 보니까 장황하게 길어져서 지루했겠지만 잘 스크랩해 두면 나중에라도 여행갈 때 큰 도움이 될겁니다.  좋은 나라에 살면서 좋은 여행 많이 하세요.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경치이고, 영혼과 정신에 생생한 영양을 공급하는 천연영양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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